[궁금증해결]

토마토는 언제 우리나라에 들어왔을까?, 토마토는 채소일까 과일일까?

슈가콩 2024.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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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는 스페인을 통해 필리핀에 전해졌고, 필리핀에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전역으로 퍼졌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언제 토마토가 전해졌을까?

토마토
토마토

토마토의 전래

토마토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광해군 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芝峯類說)에 처음 등장하는데 지봉유설에는 토마토를 남쪽 오랑캐 땅에서 전해진 감이라서 남만시(南蠻侍ᰘ)라고 했고, 일년 생 풀에서 열리기 때문에 풀에서 열리는 감(草ᰘ)이라고 했다. 봄에 자라서 가을에 열매를 맺는데 맛은 감하고 비슷하고 본래 남만의 과일로 근래에 중국에 다녀 온 사신이 종자를 구해 온 외국과일이라고 적었다. 이수광의 지봉유설은 1614년에 쓰여진 책으로 임진왜란이 끝난 후 18년이 지났을 때이며 이수광 이 지봉유설을 편찬하기 직전에 토마토가 조선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 고추에 이어 전해진 토마토에 대해 당시 조선 선비들은 무척 낯선 인상을 받았는데 먹지도 못하고 기껏해야 관상용으로나 키울 수 있는 작물 내지는 아예 잡초 취급을 하고 있다. 때문에 토마토가 전해졌지만 조선에서는 이 낯선 과일에 대해 전혀 주목을 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문헌에 토마토에 관한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지봉유설 이외에는 조선 말기인 순조 때의 실학자인 이규경이 쓴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토마토에 관한 글이 보인다. “토마토인 남만의 감이 이 땅에 전해진지 200여 년이 지났는데 과일과 화초를 재배하는 사람에게 물어봐도 어떤 종류의 과일인지 잘 모르고 남겨진 기록도 없다. 지봉유설 이후에도 성호 이익(李瀷)과 다산 정약용(丁若鏞)이 토마토에 관해 많은 저술을 남겼다고 하지만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소문만 들었을 뿐 정작 기록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얼마나 자료가 없었으면 토마토에 대해 아는 것이 풀벌레만도 못하다며 답답해했다.

토마토는 채소일까 과일일까?

토마토는 지금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채소이자 과일로 세계 토마토 생산량이 2009년 에 무려 1억5,000만 톤에 이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다. 채소로 요리를 해서 먹거나 아니면 과일로 먹거나 혹은 주스에서부터 토마토를 가공한 케찹으로 먹거나 우리의 일상 먹거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토마토다. 지금은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는 토마토이지만 원산지인 남미에서 구대륙으로 토마토가 전해진지 500년 동안에 토마토가 환영받지 못한 열매였다는 것이 놀랍다. 우리나라에 토마토가 전해진 것이 1614년 이전, 토마토를 바라보는 조선 선비들의 시각이 특이하고 우리가 토마토를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 것이 불과 70-80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의외다. 토마토라는 작은 열매를 통해 본 인간들의 갖가지 이해관계와 다양한 역사가 흥미 롭다.

일반적으로 과일과 채소의 분류는 과일은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 즉 목본성(木本性) 열매를 말하 고 채소는 풀에서 열리는 열매, 다시 말해 초본성(草本性) 열매로 분류한다. 원예학적으로 토마토는 과채류에 속하는 채소이다. 채소의 종류 중에서 과실과 씨를 식용으로 하 는 것이 과채류로 잎사귀를 먹는 엽채류, 뿌리를 먹는 근채류와 대응하는 용어다. 오이·참외· 수박 등 박과의 채소, 토마토·가지 등 가지과의 채소, 잠두·완두 등 콩과의 채소, 그 밖에 딸기 등이 이에 속한다. 이런 분류를 보면 토마토는 채소에 속하지만 상식적인 관념상 딸기와 수박, 참외가 과일이 아닌 채소라는 분류에는 거부감이 느껴진다. 식물학적 정의는 다른데 과일은 씨방이 자라서 씨를 감싸면서 조직이 성장한 것이다. 이 기준으로 보면 토마토는 과일이며, 가지, 오이, 호박도 그런 의미에서 과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역시 쉽게 동의 할 수 없는 부분이다. 토마토를 과일로 먹는지 음식으로 먹는지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 보통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구분 짓는 방법으로 식사를 할 때 요리의 재료로 사용할 경우는 채소, 식사를 끝낸 후 후식으로 먹을 경 우 과일로 나누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토마토를 주로 과일로 먹지만 서양요리에서는 토마토를 요리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미국의 토마토 논쟁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놓고 미국에서도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었다. 막대한 이익이 걸린 문제였기에 법정 소송으로 비화됐는데 미국은 1887년 관세법을 개정하면서 수입 과일과 채소에 대해 관세를 달리 매겼다. 과일에 대해서 는 수입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지만 채소에 대해서는 세금을 물도록 해서 이 무렵까지만 해도 미국에서 역시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를 놓고 꽤나 많은 논쟁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뉴저지 주에서는 토마토를 과일로 분류했고, 알칸사 주에서는 동일한 법률을 적용하면 서도 경우에 따라 과일 또는 채소로 분류하는 모순이 생겼다. 이후 수입 채소에 대해서는 관세를 매기겠다는 법이 발효되면서 토마토 수입업자들이 ‘토마토는 채소’라는데 반발했다. 뉴욕의 과일 수입업자였던 존 닉스 형제가 뉴욕의 세관원이었던 에드워드 헤든을 상대로 토마토 에 10%의 관세를 매긴 것은 잘못됐다며 소송을 제기했고 끝내는 연방 대법원까지 올라가게 됐다. 이른바 닉스 대 헤든(Nix vs Hedden)사건으로 유명하며 1893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통해 토마토가 채소인지 과일인지를 결정하는 판결을 내려 지루한 논쟁을 잠재웠다. 9명의 대법관들이 논란을 벌인 끝에 만장일치로 내린 최종 판결은 ‘토마토는 채소다’였다. 이유는 식물학적으로는 토마토가 과일이지만 식사할 때 채소와 과일의 구분은 요리로 사용되느냐 혹은 디저 트로 사용되느냐 인데 토마토는 주로 요리로 사용되기 때문에 ‘채소’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이 최종 판결을 내린 “토마토가 과일이냐, 채소냐”라는 사건의 본질은 토마토를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관세 부과가 달라지는 만큼 토마토의 기준을 식물학적 분류, 다시 말해 교과서적으로 해석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이 토마토를 어떻게 먹느냐를 기준으로 해석했다는 것이다. 맹목적인 원리원칙을 추종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맞춰 법을 해석한 판결이라는 것이다.

토마토의 전파

역사 토마토를 놓고 다양한 논쟁이 벌어진 이유는 토마토가 낯선 열매에 대한 사람들의 거부감 때문이었다. 토마토의 원산지는 안데스 산맥의 고원지대로 옥수수 밭에서 자라는 잡초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안데스 산맥에서 자라던 야생 토마토가 멕시코 등지에 전해지면서 아즈텍 문화권의 고대 멕시코 사람 들이 기원전 500년 무렵부터 토마토를 재배해 먹기 시작했는데 토마토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다녀 온 이후다. 정확하게 누가, 언제 토마토를 유럽에 전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1493년 콜럼버스가 귀국하면서 가 져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스페인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z)가 1521년, 현재의 멕시코 수도인 멕시코시티를 점령한 후 토마토를 발견하고 유럽에 전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후 유럽의 각국으로 퍼졌고, 또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필리핀을 통해 아시아로 전파됐다. 처음 전해진 토마토를 유럽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토마토는 사실,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는 쓸데없는 작물이었는데 콜럼버스가 처음 향신료인 후추를 찾아 떠났던 것처럼 유럽의 상류층은 음식 맛을 더하는 향신료 가 필요했다. 반면 민중은 굶주린 배를 채워줄 곡식이 필요했는데 토마토는 어느 쪽의 욕구도 충족시 켜주지 못했다. 게다가 처음에 전해진 토마토는 유럽 풍토에 적응하지 못해 질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먹으면 해로운 식물 취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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