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에는 떡국을 먹어야할까?
설날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드시 떡국을 먹는데 지금은 전통 민속이 많이 사라지고, 전통 민속의 의미가 퇴 색했기 때문에 굳이 떡국에 큰 의미를 두지 않지만 1세기 전까지만 해도 달랐다고 하는데요. 혹시 설날 떡국을 먹지 않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줄 알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일제 강점기 동아일보의 신문기사를 보면 1927년 2월 3일자 기사에는 입던 치마를 저당 잡히고라도 떡 살 돈을 마련해 아이 들에게 떡국을 먹이고 싶은 어머니의 모정이 절절하게 그려져 있다.
떡국을 먹어야 나이를 먹는다?
나이를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냐?고 묻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꽤 오래 된 풍습이었던 모양인데 조선 순조 때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도 설날이면 떡국을 끓여 손님을 대접하고 또 시장에서 떡국을 시절음식으로 팔기도 하는데 우리말 로 나이가 몇이냐고 물을 때 떡국을 몇 그릇 먹었냐고 묻는 것과 같다고 나오는데 이 때문에 떡국을 나이를 더하는 떡이라는 의미에서 첨세병(添歲餠)이라고 한다고 했다. 더할 첨(添) 자에 나이 세(歲)이니까 나이를 더하는 떡이고 국이라는 의미다. 설날이면 반드시 떡국을 먹었기에 최소한 조선 후기인 순조 때 이전부터 지금까지도 떡국 먹은 그릇 수로 나이를 따진 것이다. 물론 현대 같으면 젊어지겠다며 떡국을 먹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옛날 기 준에서 떡국을 먹지 않으면 어른이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새해 떡국의 의미
떡국의 여러 의미 중 하나는 하늘에 복을 비는 음복(飮福) 음식이라는 것인데 요즘은 설날이 그저 명절일 뿐이고 음력으로 새해가 시작된 날이라고 알고 있을 뿐이지만 농사가 중심이었던 옛날, 정월 초하루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되는 날이었다. 설날을 원단(元旦)이라고도 하는데 6세기 무렵 쓰여 진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정월 초하루는 세 가지가 시작되는 삼원(三元)의 날이라고 했다. 일년이 시작되는 날(歲之元)이며, 하루가 시작되는 날(時之元)이고, 한달이 시작되는 날(月之元)이다. 근대 한국의 사학자이자 문학가였던 최남선은 조선상식(朝鮮常識)에서 설날 떡국을 먹는 풍속은 상고(上古)시대 이래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먹었던 음복 음식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새해 첫날은 천지만물이 새롭게 태어나는 날로 태양이 부활하는 날이기 때문에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음복으로 음식으로 먹었는데 정결한 흰떡과 밋밋한 국으로 절식을 삼은 것으로 보았다. 양의 기운이 돋아나 만물이 되살아나고 농사가 시작되는 날, 질병을 예방해 장수를 빌며 평안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먹었던 음식이 바로 떡국으로 4세기 무렵 진(晉)나라 때 속석(束晳)이 쓴 떡에 관한 글인 병부(餠賦)에 정월 초하루는 음양이 교차하는 날로 음의 기운이 점점 쇠퇴하고 양의 기운이 살아나는 날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봄이 시작되는 이 날, 일년의 평안을 기원하면서 만두국(餠湯)을 먹는다는 것이다. 떡국이나 만둣국은 만물이 새롭게 살아나는 날, 일 년 동안의 풍요와 건강을 기원하며 먹는 음식인 것이다.
떡국 떡은 돈 모양
가래떡의 특징은 국수보다는 굵기가 두껍지만 길이는 국수처럼 길다는 점때문에 가래떡으로 떡국을 끓이려면 떡을 썰어야 하는데 옛날 문헌을 보면 하나 같이 가래떡 썰어놓은 모양을 엽전과 같다고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왜 하나 같이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썬다고 했을까? 둥글게 생긴 것이 굳이 엽전뿐만이 아닌데 학식이 높았던 유득공이나 홍석모, 김매순이 이재(理財)에 밝아서 떡 썰어놓은 모양을 보고 돈처럼 생겼다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썰어 놓은 떡국 떡의 모양에는 역시 인간들의 원초적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 되기를 소원하고 건강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한다. 권력은 십년을 가지 못한다는 권불 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처럼 권력욕은 다음 차원의 문제이니 새해 엽전 모양으로 생긴 떡국을 먹으며 돈을 먹는 것처럼 부자 되기를 빌었던 것이고, 가래떡을 국수 가락처럼 기다랗게 뽑으며 오래 살기를 소원했을 것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떡국을 끓일 때는 가래떡을 동전처럼 얇고 가늘게 썰어((細切薄如錢) 간장을 푼 끓는 물에 소고 기나 꿩고기를 넣고 후춧가루를 넣어 조미를 한 후에 먹는데 이를 떡국(湯餠)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동국세시기와 같은 시대인 조선 순조 때 한양의 세시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서 도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썰어 넣는다고 했으며 섣달 그믐날이면 가래떡을 엽전 모양 으로 가늘게 잘라놓은 후 설날에 떡국을 끓여 식구 숫자대로 한 그릇씩을 먹는다고 했다. 좋은 쌀로 가루를 내어 체를 쳐서 고르고 맑은 물에 반죽해 찐 것을 안반에 놓고 떡메로 오래 친 다음 조금씩 떼어 손으로 비벼 문어발처럼 둥글고 길게 늘인 모양의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권모(拳模)라고 하며 가래떡을 말한다. 미리 준비해 둔 장국에 끓일 때 가래떡을 동전 모양으로 얇게 썰어 넣으면(沸將餠細切如錢形) 끈적거리지도 않고 부서지지도 않아 좋다.
경도잡지(京都雜志)
18세기 말 정조 때 유득공이 지은 세시풍속지인 경도잡지에도 가래떡은 엽전 모양으로 썬다고 적혀 있다. 멥쌀로 떡을 쪄서 치고 비벼 긴 가닥을 만들고 굳기를 기다려 엽전 굵기로 자른다.(粳 米餠按摩成條候硬橫截薄如錢) 이것을 끓이다가 꿩고기와 후춧가루를 넣어 맛을 내면 세찬으로서 없어서는 안 될 떡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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