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해결]

임금님은 하루 몇번 식사를 하였을까? 점심식사의 유래와 얽힌 이야기

슈가콩 2024. 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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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님은 하루 몇번 식사를 하였을까?

임금님의 식사를 보면 여섯 시에 이른 아침인 초조반(初早飯) 열 시 무렵에 제대로 된 아침 식사인 아침 수라를 먹었으며 정오 무렵에 점심(點心)을 들고 오후 세 시 무렵인 신(申)에 참을 먹는다. 이 후 여섯시 무렵이 되면 저녁 식사인 저녁 수라를 들고 잠자리에 들기 전인 아홉시에 야참을 들었던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 이렇게 계산하면 하루 여섯끼의 식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점심과 야참 그리고 오후 세시 무렵에 먹는 음식은 제대로 된 식사가 아닌 출출해진 속을 채우려는 간식의 의미로 봐야 한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조선의 왕이 하루 다섯, 여섯 번의 식사를 했다고 말하지만 정작 조선의 왕들은 스스로 하루 세끼를 먹고 절약을 할 때는 두 끼를 먹는다고 말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선조 26년(1593년)의 기록에서 선조는 흉년이 들자 내가 평일에도 늘 삼시 세끼를 먹지 않고 있으니 내가 먹을 쌀의 반을 덜어 죽을 쑤어 먹는 사람에게 먹이도록 하라는 교지를 내린다. 정조실록에도 15년(1791년)의 기록에 민간에서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자는 하루에 세끼 밥을 먹지만 나는 하루에 두 끼만 먹는다고 했다. 조선의 임금들은 정작 본인 스스로는 하루에 세 번 내지는 두번 밥을 먹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음식 먹는 회수를 놓고 현대인들은 하루 다섯, 여섯 번을 먹는다고 이야기하는 것이고 조선의 왕들은 간식이 아닌 진짜로 밥을 먹는 회수를 놓고 하루 두세번 식사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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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이란?

점심의 뜻 알아보기 점심은 한자로 점찍을 점(點)에 마음 심(心)을 써서 점심이 글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마음에 점을 찍는다는 뜻이다. 아침밥과 저녁밥 사이, 낮에 먹는 밥이라면 예컨대 낮밥이라고 할 수도 있다. 황제와 제후를 제외한 사람들은 하루 두 끼만을 먹었던 시절, 아침식사와 저녁식사 중간, 혹은 전 후에 시장기를 달래 줄 가벼운 요깃거리가 필요했는데 바로 이것이 간식으로 먹은 것이 점심이다. 점심은 그래서 간단하게 먹는 것, 즉 소식(小食)이 점심이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이익이 성호사설에서 점심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오찬을 점심이라고 하는데 많이 먹으면 점심이 아니다. 점심이라는 것은 소식(小食)의 명칭인데 오찬이라도 적게 먹으면 점심이라고 일러도 되는 것이다. 지금과 달리 아침 식사 전 공복을 채우는 음식을 보고 점심이라고 했던 것으로 보이며 성호사설에서 이익은 점심은 마음 이 허기져 출출한 것으로 음식을 먹어 허기진 마음에 점을 찍듯이 적은 양의 음식을 먹어 배고픔을 생 각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점심이라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하루 몇끼를 먹었을까?

옛날 사람들은 하루 두 끼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먹을 것이 그만큼 귀했기 때문으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나 부자들이 아니면 대부분 하루 두 끼를 먹었다. 힘들게 일하는 농부들도 하루 2-3세끼가 일반적이었으며 농사일을 해야 했기에 아침을 든든히 먹고 점심은 주로 새참을 먹은 후 저녁을 먹었는데 농사일에 바쁜 여름에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농한기인 겨울철에는 농부들도 아침과 저녁 두 끼를 먹었으며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10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식사 횟수를 정한 규정도 있었는데 사회적 신분에 따라 식사회사를 정했다. 말도 안 될 것 같은 이런 규정이 정해지고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은 서기 79년 무렵이다. 황제는 이른 아침에 한번, 또 아침에 한번 그리고 낮에 한번, 저녁에 한번 네 차례 식사를 하고 제 후는 세 번 식사를 하며 공경대부는 하루 두 번 식사를 한다. 한나라 때 학자인 반고(班固)가 편찬한 서적인 백호통의(白虎通義)에 수록돼 있는 내용으로 백호 통의는 일개 학자가 자기의 생각을 적어놓은 책이 아니다.

백호관회의라는 회의의 결정사항을 기록 한 책으로 밥 먹는 횟수를 정한 백호관회의는 터무니없는 모임 같지만 사실 이 회의에서 한나라는 유교를 국가 통치이념으로 정했다. 그리고 임금을 가장 우선순위로 두는 삼강오륜을 비롯한 유교사회의 도덕체계를 세웠으며 신분에 따른 하루의 식사횟수도 이때 정했다. 백호관회의에서 하루에 몇 번 식사를 할 것인지도 확정을 했는데 황제는 중앙에 머물며 사방을 통치하는 것처럼 하루에 네 번 식사를 한다고 했다. 또 논어를 인용하면서 제후는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고 공경대부는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는데 귀하고 천한 것의 차이 때문이라고 했다. 공경대부는 경과 대부로 정치를 직접 담당하는 고위직 벼슬아치이니 왕과 제후가 아니니 하루에 두 번만 식사를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하루 세끼 밥을 먹는 것은 제후에게 적용되는 식사 예절이다. 물론 백호관회의에서 결정한 신분에 따른 식사 횟수 때문에 하루에 2번, 혹은 3번을 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동양에서 평민들은 근대 초기까지도 신분과 경제력에 따라 하루 2번 식사가 일반적이었으며 조선시대 점심식사 조선시대에 보통의 경우는 하루 두 끼를 먹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하루 세끼를 먹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지만 그 이전에는 보통 두 번의 식사를 했다. 공경대부는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한다고 한나라 때의 백호통회의에서 규정한 것처럼 조선의 관공 서에서는 아침과 저녁으로 하루 두 끼 밥을 먹었다. 조선의 관리들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 식사가 제공됐는데 이긍익의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에는 관에서 아침과 저녁으로 밥을 준다고 기록해 놓았다. 정조 때 실학자인 이덕무도 청장관전서에서 사람들은 하루에 아침과 저녁으로 다섯 홉의 곡식을 먹는다고 했으니 역시 하루 두 끼 식사가 일반적이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로 가면서는 하루 세끼로 식사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보이는데 순조와 헌종 때 활동했던 실학자 이규경은 오주연문장전산고에 쓴 점심 변증설에서 점심은 원래 조금 먹는 것을 뜻하는 말인데 지금은 오후에 먹는 식사가 양이 많으니 점심이라고 할 수 없다고 적어 놓았다. 그러니까 오후에 새참으로 간식처럼 먹는 것이 점심인데 그 양이 적지 않으니 새참이 아니라 제대로 된 식사라는 뜻이니 이렇게 되면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끼의 식사를 했다는 뜻이 된다. 조선시대 를 살았던 일반인이나 관리들은 하루에 두 번 식사를 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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