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월 대보름 부럼이란?
부럼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세시풍속인 정월 대보름에 깨물어 먹는 견과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며 주로 호두, 잣, 밤, 땅콩, 은행 등 딱딱한 껍질을 가진 견과류를 부럼이라고 하지요. 부럼 깨는 방법은 여러 가지 중 나이 수대로 깨무는 방법이 있으며 예전에는 자신의 나이만큼 부럼을 깨물기도 했습니다. 또는 처음 깨문 부럼은 마당에 버려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했습니다.
부럼을 깨는 이유
부럼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지만 과일과 견과를 깨물면서 피부병을 방지하고, 건강한 치아를 갖게 해달 라고 소망한 것은 동양에서 공통으로 보이는 전통풍속이지요. 우리 문헌에 부럼 풍속은 18세기 영조와 정조 이후에 집중 적으로 보이는데 『동국세시기』에 대보름날 아침 호두와 밤, 잣, 은행, 무를 깨물며 일 년 열두 달 무사태평과 부스럼이 나지 않도록 기원하는데 이것을 부럼 깬다고 했다. 한자로 작절(嚼癤)이라고 썼는데 씹을 작(嚼), 부스럼 절(癤)이니 부스럼을 깨물어 터뜨린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 서울의 풍속을 적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에는 부럼 깨는 견과류를 한자로 교창과(咬 瘡果)라고 했으니 깨문다는 교(咬)자에 부스럼 창(瘡)자로 역시 부스럼을 깨물어 터뜨리는데 쓰는 열 매라는 뜻이다. 이밖에 소종과(消腫果)라고도 하는데 종기를 없앤다는 뜻이니 모두 비슷한 뜻이다. 19세기 정조 때 문인 김려가 쓴 『담정유고(喓庭遺藁)』에 왜 부럼을 깬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 실려 있다.
정월 대보름 풍속을 읊은 시에 “호두와 밤을 깨무는 것은 바가지를 깨는 것처럼 종기의 약한 부분을 깨물어 부숴버리는 것이다. 신령의 소리를 흉내 내 ‘솜씨 좋은 의사가 침을 놓는 것’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깨문다.”고 했다. 부스럼은 피부병이지만 옛날에는 역귀(疫鬼)가 퍼트리는 돌림병이라고 믿었다. 때문에 역귀를 물 리칠 수 있는 하늘의 신령 목소리를 빌어 부스럼이 생기기 전에 미리 종기를 터뜨린다는 뜻에서 견과 를 깨물었던 것이라고 짐작된다. 한겨울인 대보름날 “내 더위 사가라.”고 외치는 것과 같은 이유다. 부럼을 깨는 까닭은 또 있다. 종기를 미리 터뜨려 부스럼을 없앤다는 유감 효과도 있지만 부럼 깨 는 소리에 돌림병 귀신이 놀라 도망가라는 주문이다. 순조 때의 학자 윤기는 『무명자집(無名子集)』에서 부럼으로 밤을 깰 때는 소리가 크게 울리도록 (生響) 깨물어야 한다고 했다.
위생이 좋지 않았던 조선시대 이전에는 피부병이 큰 골칫거리였을 것이다. 때문에 고종 때 이유원은 『가오고략(嘉梧藁略)』에서 부럼 깨는 풍속은 신라,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라고 했다. 동양의 다른 곳도 비슷하다. 이수광은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본초에 이르기를 빈랑은 영남에서 나는 과일로 남방은 땅이 따뜻하기 때문에 이것을 먹지 않으면 부스럼, 종기를 막지 못한다고 적었다. 이어 조선 선조 때 학자인 조완벽(趙完璧)의 말을 빌어 안남국 사람은 언제나 빈랑을 먹는다. 고로 더운 지방의 땅에서 나는 기운으로 인한 부스럼을 막고 치아를 튼튼하게 할 수 있다고 했다.
옛날 부럼은 무엇이었을까?
예전에는 땅콩 부럼이 없었는데 요즘 대보름 부럼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견과류는 땅콩이다.약 160년 전인 1849년에 발행된 풍속서인 『동국세시기』에는 부럼으로 밤과 호두, 은행, 잣, 무 종류를 깨문다고 나온다. 땅콩이 없는 대신 엉뚱하게 무가 들어 있는데 1925년에 나온 최영년의 『해동죽지』에도 부럼으로 호두와 잣(海松子)만 보인다. 부럼으로 예를 든 견과가 너무 적어서 당시 땅콩을 깨물었는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예로 들지 않은 것을 보면 땅콩이 없었거나 적어도 주요 부럼으로 꼽히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문 연재물을 모아서 1946년에 책으로 발간한 최남선의 『조선상식』에는 대보름 새벽에 밤, 호두, 은행, 잣, 무 등을 깨문다고 했는데 그리고 괄호 속에다 요즘에는 무가 빠지고 대신 낙화생(落花生)을 깨 문다고 적었다. 낙화생은 땅콩의 한자말이니 드디어 대보름날 부럼으로 땅콩이 등장한 것이다. 지금은 가장 대표적인 부럼이 땅콩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만 땅콩은 보이지 않고 무를 깨물었다. 예전에는 땅콩이 없었기 때문인데 바꿔 말하자면 땅콩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역사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땅콩보다 아몬드가 먼저 전해졌다?
일반적으로 땅콩은 우리나라에 옛날부터 있었지만 아몬드는 현대에 전해진 견과류라고 생각하는데 땅콩보다는 아몬드가 먼저 전해졌다. 아몬드 역시 땅콩에 관해 기록한 정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보인다. 다만 땅콩은 이덕무가 중국에 갔을 때 처음 본 반면 아몬드는 한양에서 이미 재배하고 있다고 청장관전서에 기록했다. 편도(་桃)라는 글에 “지금 교서관(校書館) 동쪽 담장 아래에 복숭아나무 한 그루가 심어져 있다. 납작한 열매가 맺었는데 세속에서 말하는 ‘또애감’이다. 사람들이 ‘감복숭아(枾桃)’라고만 알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진품으로 여기는 줄을 알지 못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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