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증해결]

생일날 미역국은 왜 먹게되었을까? 미역국에 담긴 이야기

슈가콩 2024. 9.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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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역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기 힘든 우리 고유 음식이다. 아 이를 낳은 어머니가 먹는 첫 음식이 미역국이고 생일날 어김없이 먹는 미역국인데 우리는 왜 미역과 이런 인연을 맺게 된 것일까?

미역국
생일 미역국

우리나라에서는 왜 미역국을 먹을까?

미역은 옛날부터 한반도 해역에 풍부했고 품질도 좋았는데 기원전 4세기 무렵의 중국 사전인 이아(爾雅)에 푸른 실로 땋은 끈같은 것이 동해 바다에 있다고 적혀있으며 바다에서 자라는 해초를 풀이한 것 같은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바로 우리나라 미역이라고 풀이했다. 한반도에서 나는 미역은 옛날부터 유명했으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당나라에서는 함경 도지방의 미역을 최고로 여긴다고 했다. 청나라 때의 성경통지(盛京通志)에도 발해에서 당나라로 미역을 보냈다고 나와 있다. 현재 중국 길림성의 풍속을 적은 청나라 때 길림외기(吉林外記)에도 발해남쪽에 미역이 많다고 했는데 함경도 지방으로 추정된다. 미역 중에서도 특히 함경도 미역이 유명했는지 정약용은 당서(唐書)에 미역은 발해의 함흥 앞바다에서 생산되는데 맛이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먼 옛날부터 미역을 먹었으니 미역을 채취하고 생산하는 기술도 상당히 앞섰던것으로 보이며 고려사에 는 현종 7년(1016)과 문종 12년(1058) 때 미역밭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밭(田)이라는 표현을 한 것을 보면 이미 미역을 양식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은 이유는 무엇일까?

어머니가 아이를 낳은 후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미역국이 산후조리에 좋은 식품이기 때문으로 옛날부터 각종 고기를 비롯해 다른 식품과 달리 한반도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또 영양학적으로 품질이 뛰어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옛날 어머니들은 아이를 낳은 후 산후 조리로 먹는 음식, 미역국을 먼저 아이를 점지해 주고 또 앞 으로 아이의 건강과 수명을 좌우할 생명의 신인 삼신할머니에게 바친 후 감사한 마음으로 먹었다. 의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아 사망률이 높았던 시기 우리의 어머니 할머니들은 아이가 자라면서 생명의 고비를 맞을 때마다 미역국을 끓여 놓고 생명의 신인 삼신할머니에게 병들지 않고 무사하게 자라기를 빌었다. 우리가 생일날 먹는 미역국은 전통 신앙 속에서 한민족에게 생명을 주고 일생을 주관하는 삼신할머니에게 바치는 제물이었다. 생명이 태어난 날인 생일날마다 미역국을 먹으며 삼신할머니에게 무병장수를 빌었던 것이으로 미역국은 한민족의 생명의 신에게 바치는 감사와 소원의 음식인 것이다.

세계의 생일 음식은 무엇일까?

중국에서는 생일에 국수를 먹는데 생일에 먹는 국수를 장수면(長壽麵)이라고 하는데 국수 가락처럼 길게 오래 살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서양에서 먹는 생일 케이크는 고대 그리스에서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Artemis)에게 바치는 음식에 서 비롯됐다. 아르테미스는 출산을 돌보며 다산(多産)과 번영을 주관하는 여신인 동시에 아이들의 수 호신이다. 생일 케이크가 둥근 이유도 달을 본 따 만들었기 때문인데 생일 케이크를 먹으며 아르테미 스에게 건강과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신에게 바치는 음식이었던 만큼 고대 케이크는 밀과 꿀, 과일 등 의 좋은 재료로 만들어 어쩌다 특별한 날에 먹는 고급 음식이다.

조선시대 구호물품 미역

미역은 조선시대에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빈민구제와 사회봉사 활동에서 빼놓아서는 안 되는 필수 품목이었다. 조선시대에 부모 잃은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시설이 있었는데 정조는 진휼청(賑恤廳)을 설치하면서 흉년에 다니면서 빌어먹는 아이의 구제 대상은 열 살까지, 길가에 버려진 아이는 세 살로 한정해 보이는 대로 보고해 진휼청에서 돌보라고 명한다. 그러면서 빌어먹는 아이는 흉년에만 보리가 나기까지 거두어 기르고 버려진 아이는 유모를 두어 기르되 나라에서 쌀과 미역을 지급하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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