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종류의 음식재료를 한 곳에 모아 넣고 비벼서 새로 운 맛을 창조하는 비빔밥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한국 고유의 음식이다. 한국인은 옛날부터 여러 음식을 섞어서 비벼 먹는 것을 특별히 좋아했던 모양이다. 조선의 선비 중에는 비빔밥 예찬 론을 편 사람들이 한 두 명이 아니고 그 때문인지 조선시대 에 이미 다양한 종류의 비빔밥이 발달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특별할 것도 없고, 또 평소에 먹는 반찬을 밥에다 넣고 고추장이나 간장 으로 비비면 되는 간단한 음식이니까 먼 옛날부터 조상 대대로 먹었을 것 같지만 상식과 달리 비빔밥 은 누구나 아무 때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을 수 있다. 더욱이 지금 우리가 먹는 비빔밥처럼 갖 가지 양념을 넣고 제대로 비빈 비빔밥은 그 역사가 생각보다 훨씬 짧을 수 있다. 비빔밥의 기원에 대해서는 궁중음식에서부터 농번기음식, 임금의 피난음식, 제사를 지내고 먹는 음복 음식, 심지어 연말에 묵은 음식을 처리하면서 먹는 음식에다 동학혁명군의 음식까지 다양한 기원설이 보인다.
비빔밥의 역사와 유래
우리나라 옛 문헌에서 비빔밥이라는 단어가 처음 보이는 시기는 많이 알려진 것처럼 19세기 말, 20세기 초반이다. 시의전서(是議全書)라는 요리책에 한글로 부븸밥이 나온다. 한자로는 골동반(汨董 飯)이라고 표기했는데 이후부터 다른 요리책에도 비빔밥이라는 한글 명칭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비빔밥의 역사가 100년 남짓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한글 비빔밥이 이무렵에 보일 뿐이다. 시의전서에 나오는 골동반은 음식으로는 조선 초기, 용어로는 11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골동반 중에서 골동은 골동품이라고 할 때의 골동이다. 사전적으로 골동(骨董)은 오래 된 것이나 희구한 옛날의 도자기, 예술품으로 알고 있는 정의하지만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것이 한데 섞인 것이 라는 뜻도 있다. 그러니까 골동반(骨董飯)은 다양한 재료를 한데 섞어 놓은 밥이라는 뜻이 된다. 골동반이라는 음식은 조선시대 문헌에 여러 번 보인다. 홍윤성이 비빔밥 이야기가 실린 기재잡기(寄齋雜記)를 쓴 박동량은 인조 때 학자로 17세기 사람이지만 홍윤성은 15세기 사람이니 조선 초기에 해당된다. 정조 때 이덕무도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서 골동반을 먹었다고 했으며 헌종 때 이규경(李圭景 1788-1856)은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서 골동반의 종류를 상세하게 묘사해 놓았다. 문헌 기록으로 볼 때 비빔밥인 골동반은 음식은 조선 초기에도 보이지만 문헌에 등장하는 빈도로 봤을 때 비빔밥이 제삿날이나 손님접대, 호화요리가 아닌 일반적인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조선 후기 이후일 가능성이 높다.
지역별 비빔밥의 종류
이규경이 다양한 비빔밥을 소개하면서 평양비빔밥을 별미로 꼽은 것처럼 조선 말기에 이미 지역 에 따라 유명한 특산 비빔밥이 명성을 떨쳤다. 지금은 전주비빔밥이 유명하지만 조선 말기에는 평양 비빔밥, 근대 초기에는 진주비빔밥, 해주비빔밥이 이름을 날렸고, 비빔밥의 한 종류인 제삿밥도 보인 다. 이런 뿌리가 있었기에 지금의 통영 멍게비빔밥, 정선 곤드레비빔밥, 마산 미더덕비빔밥 등 다양한 비빔밥의 전통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예전 지역 특산 비빔밥의 특징을 알아본다.
전주비빔밥
현재 비빔밥의 대명사는 전주비빔밥이다. 하지만 언제부터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졌는지는 분명하 지 않다. 조선과 근대 문헌에 전주비빔밥에 대한 기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전주비빔밥은 현대에 고급화가 이뤄지면서 유명해진 음식이라고 보는 해석이 일반적이다. 전주비빔밥의 뿌리는 17세기부터 발달한 전주 남문 밖 시장의 콩나물 비빔밥에서 찾기도 한다. 밥 지을 때 콩나물을 넣는 콩나물밥은 전주 고유의 향토음식이었는데 현대에 전주 한정식에 편승해 관광 상품화되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비빔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전주는 옛날부터 콩나물로 유명했던 지역이다. 전주시사(全州市史)에는 콩나물이 전주부(全州府) 일대에서 많이 생산돼 하루 세끼 식사 때 반찬으로 올랐다고 했다. 전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도 각종 콩나물 무침이 나오는 한정식과 함께 비빔밥, 콩나물국밥, 콩나물밥을 꼽는다. 그런데 1929년 발행된 별건곤이라는 잡지에서도 팔도명물음식 중 전주 음식으로 비빔밥이 아닌 콩나물 국밥을 꼽은 것을 보 면 전주비빔밥이 유명세를 탄 것은 현대에 들어서일 가능성이 높다.
진주비빔밥
전주비빔밥에 밀려서 명성을 잃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진주비빔밥이 더 널리 알려져 있었다. 별 건곤 잡지의 팔도명물음식 예찬 특집에도 전주비빔밥 대신에 진주비빔밥을 비빔밥 명물로 꼽았다. 특별히 팔도명물음식의 선정 기준이 있었던 것은 아니어서 잡지사 임의로 선정한 것 같으니 진주 비빔밥이 전주비빔밥보다 더 유명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기사를 쓴 필자는 서울 비빔밥 과 같이 큰 고기점을 그대로 올려놓은 것과 콩나물 발이 세치나 되도록 넝쿨지게 놓은 것과 진주비빔 밥은 도저히 비교할 수가 없다며 진주비빔밥을 찬양하고 있다.
진주비빔밥은 하얀 쌀밥 위에다 숙주나물, 고사리, 도라지, 산채 나물 등 갖가지 야채로 색을 조화 시키고 그 위에다 볶은 쇠고기와 육회를 올려놓아서 화려하기가 그지없다. 이성우의 한국요리문화사 에는 진주비빔밥을 화반(花飯)이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비빔밥의 모양이 꽃처럼 화려하다는 의미였을 것이다. 진주비빔밥, 진주냉면은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진주의 특징으로 땅이 기름 지고 풍속은 부유하며 화려함을 숭상한다고 했다. 화려하다는 진주비빔밥에는 지역의 이런 역사적, 문 화적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한편 진주비빔밥의 유래에 대해 임진왜란 진주대첩 때 결사항전을 결심한 백성과 군인들이 있는 재료를 모두 모아 비빔밥을 만들고 남아있던 소를 잡아서 육회로 얹어 비벼 먹으며 전의를 다진 것에서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문헌상으로는 전혀 검증이 되지 않은 이야기다.
평양비빔밥
지금 평양냉면은 유명해도 평양비빔밥은 이름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조선시대와 근세 문헌 을 보면 평양 비빔밥이 꽤 유명했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甘紅露)라는 술과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다. 이규경은 평양 비빔밥을 채소 비빔밥이라고 소개했는데 비빔밥 중에서도 평양의 것이 진품(珍品)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맛이 독특한 것 같다. 관련 자료를 보면 평양 비빔밥은 볶은 쇠고기에다 갖은 야채를 밥 위에 얹어서 나오는 비빔밥이라고 했으니 요즘 음식점에서 대중적으로 먹는 비빔밥과 별 차이가 없다.
해주비빔밥
1925년 출간된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전국 유명 음식으로 해주 비빔밥을 꼽았다. 조선 말기를 무대로 한 김주영의 소설 객주에도 해주 명물음식으로 도미국수와 비빔밥을 꼽았다. 해주 비빔밥은 해주교반(海州交飯)이라고도 하는데 특징은 밥을 볶아서 비비는 것이다. 볶은 밥에 다 버섯, 도라지, 고사리, 해삼, 전복, 조개, 닭고기, 계란 등을 얹어 먹는 음식으로 밥 속에 산해진미가 다 담겨있다고 했다. 그런데 옛날 우리나라에는 볶음밥이 없었다. 1930년대 신문기사에 볶음밥은 중국음식이라고 했 다. 해동죽지에도 해주의 명물 음식으로 소위 일반에서 말하는 골동반(비빔밥)과 비슷하다고 했으니 딱 떨어지게 비빔밥이라고 말하기 힘들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또 맛에 대한 평가도 맛이 기이하다고 해놓았다. 그러니 어쩌면 전통적인 비빔밥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현재의 볶음밥에 더 가까운 음식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마무리
비빔밥은 언제부터 우리가 먹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다만 상식적으로 비빔밥은 고급음식에서 비롯돼 발달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헌상 기록으로 보아 최소 조선시대 전반부터라고 가정했을 때 비빔밥은 함부로 먹을 수 없는 귀중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각종 나물과 김치, 고기, 생선 등을 넣고 아주 쉽게 비벼 먹을 수 있지만 조선시대 전반만 해도 고기와 생선을 말할 것도 없고 김치라고 해 봐야 무를 절인 짠지 종류에 불과했을 것이고, 나물도 양념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을 것이며 더욱이 고추장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대였다. 밥을 비빌 수 있는 재료가 소중했던 시절이니 비빔밥이 지금처럼 아무렇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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