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발견
커피(Coffea Arabica)는 생물학적 증거로 볼 때 에티오피아의 산악지대에서 기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인류가 언제 처음 커피를 접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며 이에 관해 칼디의 전설, 오마르의 전설, 모하메드의 전설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이 중 칼디의 전설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전설에 따르면 칼디(고대 아랍어로 뜨겁다는 뜻)라는 에티)오피아의 목동이 자기가 기르던 염소들이 빨간 열매를 먹은 후 춤을 추듯 활발한 것을 발견하였고 호기심에 자기도 그 열매를 먹었더니 피곤함이 가시고 정신이 맑아지면서 염소들과 함께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고 한다. 그후 이 사실이 수도승에게 알려져 기도 중에 잠이 들지 않도록 하는 종교적 목적으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커피가 처음 문헌에 등장한 것은 900년경 아랍의 의사 라제스(Rhazes, 850~922)인데 커피를 Bunca 또는 Bunchum이라고 불렀으며 1000년경 아랍의 또 다른 저명한 의사이며 철학자인 아비세나(Avicenna, 980~1037)는 처음으로 커피의 약리 효과에 대해 기술하였는데 그도 커피를 Bunchum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당시만 해도 커피가 약용이나 종교의식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본격적으로 커피가 음료로 애용된 것은 이슬람 문화권에 의해서이다. 이슬람은 술을 마시는 것을 금했기 때문으로 커피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으며 그 당시 이슬람권을 지배했던 오스만 튀르크 제국(지금의 터키)에 의해 음료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커피는 6~7세기경 에티오피아(Ethiopia)의 칼디(Kaldi)라는 목동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염소들이 빨간 열매(berry)를 따 먹고 흥분하여 뛰어다니는 광경을 목격한 칼디는 자신도 이 열매를 먹어보게 되었고, 그 결과 머리가 맑아지고 기분이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이 사실을 이슬람 사원의 수도승에게 알렸고, 기분이 좋아지고 졸음을 방지해 주는 등 수양에 도움이 되는 신비의 열매로 알려지면서 여러 사원으로 퍼져 나갔다.
커피의 전래
원산지 에티오피아에서는 농부들이 자생하는 커피 열매를 끓여서 죽이나 약으로 먹기도 했다. 9세기 무렵 아라비아반도로 전해져 처음 재배되었으며, 나중에는 이집트, 시리아, 터키에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커피 열매를 끓여 그 물을 마시거나 열매의 즙을 발효시켜 카와(kawa)라는 알코올음료를 만들어 마셨다. 이 음료는 13세기 이전까지는 성직자만 마실 수 있었으나, 그 이후부터 일반 대중들에게도 보급되었다.
이 무렵 커피는 이슬람 세력의 강력한 보호를 받았다. 커피 재배는 아라비아 지역에만 한정되었고, 다른 지역으로 커피의 종자가 나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관리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2~13세기에 걸쳐 십자군전쟁이 발발하면서 이슬람 지역을 침입해 온 유럽 십자군이 커피를 맛보게 되었다.
기독교 문화권인 유럽인들은 초기에는 커피를 이교도적 음료라 하여 배척했다. 그러나 밀무역으로 이탈리아에 들어온 뒤 교황으로부터 그리스도교의 음료로 공인받게 되었고, 일부 귀족들과 상인들을 중심으로 커피가 유행처럼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15세기에 이르러 커피의 수요가 늘자 아라비아의 상인들은 이를 독점하기 위하여 수출항을 모카(Mocha)로 한정하고 다른 지역으로의 반출을 엄격하게 제한했다.
그러나 16세기부터 인도에서 밀반출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17세기 말에는 네덜란드가 인도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유럽에 전파했다. 그 뒤 유럽의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인도와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을 식민지로 만들고 커피를 대량 재배하면서 전 세계에 알려졌다. 커피나무가 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인도, 서인도제도, 중앙아메리카, 그리고 에티오피아의 바로 이웃나라인 케냐, 탄자니아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재배되었다. 커피가 점차 대중화되면서 유럽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1896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던 고종황제가 처음 커피를 마셨다고 전해진다. 민간에서는 독일인 손탁이 정동구락부에서 커피를 팔기 시작한 이후 1920년대부터 명동과 충무로, 종로 등지에 커피점들이 생겨나면서 소수의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 뒤 8.15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군부대에서 원두커피와 인스턴트 커피들이 공급되어 대중들이 즐기는 기호음료로 자리잡게 되었다.
커피의 어원
커피(coffee)라는 말은 아랍어 카흐와에서 오스만 터키어카흐베로, 여기서 다시 네덜란드어로 코피로 간 것이 1582년에 영어로 들어간 것이다. 아랍어 '카흐와'는 원래 포도주의 한 종류를 가리키는 용어로, 식욕을 억제하는 까닭에 '배고픔을 덜다'는 의미의 카하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진다.
다른 견해로는 '힘', '에너지'를 의미하는 '쿠으와'에서 왔다거나, 중세 에티오피아에 위치했던 카파 왕국이 커피를 아랍 세계에 전해주었기 때문에 거기서 왔다는 의견이 있다.
커피의 전설
중동에서 전해지는 설로 이슬람 종교의 어느 데르비시가 적들한테 사막으로 추방당했을때 근처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라고 어떤 남자의 목소리를 환장하기 시작했다. 데르비시가 결국 커피나무의 베리랑 물을 섞어 마시려고 했지만, 열매가 원낙 딱딱하고 물에 녹지 않아서 그냥 우려낸 물을 대신 복용했다. 정력적인 효과로서 사막에서 나올수 있었고, 그의 고향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데르비시는 이 정신드는 효능이 알라신의 축복으로 믿었으며, 고향에서 이 커피음료에 대한 소문을 그 때부터 퍼트리기 시작하면서 커피가 유명하게 됐다고 한다. 예멘의 모카라는 도시에서 전해지는 설이다.
이슬람 종교의 제자였던 오마르가 기도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할 수 있는 위력을 가졌는데, 어느날, 그가 모카에서 추방 당했으며, 오사브 동굴 속에 죽도록 내버려 두었다. 굶어죽는걸 피하기 위해서 오마르는 옆에 있던 관목의 열매를 섭취하려 했는데, 너무 써서 열매들을 구웠고, 열매들이 너무 딱딱해져서 뜨거운 물에 우려 먹었다고 한다. 커피의 활발력이 가하면서 계속 동굴 속에서 살아 남았으며, 이 '마법의 열매' 소문이 모카까지 퍼지게 되었다. 이로서 모카에 추방을 내렸고, 오마르보고 돌아와달라고 요구했다.
커피의 전파
아라비아 커피나무는 AD600~800년경 에티오피아 남서쪽 카파주에서 양을 치던 양치기 칼디가 발견하였다고 전한다. 양들이 근처에서 자라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고 흥분하는 것을 본 양치기는 이 열매를 먹어 보았는데, 그 결과 이 열매를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잠이 깨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처음에는 열매로 술을 만들어 마셨지만, 13세기경부터는 현재와 같은 방법으로 마시기 시작하였다. 술 마시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던 이슬람교도들은 알코올성분이 없는 이 음료를 애용하기 시작하였다. 원산지인 에티오피아에는 아직 야생종이 남아 있으나 생산량이 많지 않다. 13세기 때 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아 반도로 퍼지기 시작했다.
14-15세기에는 예멘으로 퍼졌다. 에티오피아를 방문한 수피파무슬림 순례자들이 예멘으로 돌아갈 때 예배할 때 쉽게 피곤하려 하지 않으려고 커피를 같이 들고 갔다. 수피파들이 커피를 만들 때 커피콩을 골고루 구워서 갈은 후에 끓였으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현대적인 커피의 형태랑 방식이 아마 여기서 전해졌을 것으로 본다. 예멘에서는 커피를 잘 자라기에 흙이 매우 좋았다고 하며, 나중에 예멘의 커피는 너무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에 커피를 예멘 밖으로 수출했을 때 검사를 매우 복잡하게 했다.
이 당시만 해도 커피나무 묘목을 수출하는 건 불법 이었다. 11세기 때, 페르시아(현재 이란)의 의사였던 이븐 시나는 커피를 약으로 삼았으며, 또 다른 페르시아의 의사였던 알 라지는 '번천 이라는 약용음료도 개발했다. 15세기 말의 무슬림 할례자들이 에티오피아의 커피를 페르시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터키 등으로 커피를 퍼트렸다. 아라비아 반도뿐만 아니라 터키에서도 커피가 가난부터 귀족까지 골고루 인기가 퍼졌다. 귀족들은 커피를 위해 잔치용 다방이 따로 있는 한, 돈 덜 있는 일반 시민들은 "카베 컨즈" (Kaveh Kanes) 아니면 "카베 카네"(Qahveh Khaneh) 라는 전통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터키의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서 커피를 소개 받았으며, 터키의 첫 커피하우스는 타타칼리 거리 (Tahtakale)의 키바 한 (Kiva Han)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사람들은 커피하우스에 체스나 백개먼등 보드 게임 했으며, 뉴스를 소통하거나 음악연주, 연극, 대화로 시간을 떼웠다. 커피랑 커피하우스가 인기가 매우 높았으며, 터키랑 아라비아인들의 생활에 너무나 중요한 위치가 되어, "위대한 자의 학교"라는 명칭까지 붙어졌고, 터키의 법에서 남편을 위해 커피를 안 끓어주는 부인을 이혼하는데 합법시켰다.
터키는 16세기 때 오토만 제국으로 승격했다. 1536년에 예멘을 지배했으며, 오토만 제국은 예멘에서 자라고 있던 커피농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멘의 모카지방에서 자란 커피는 그의 독특한 맛으로 그 지역에서 만든 커피를 모카라고 불렀다. 또한 오토만 궁전에서 커피를 끓이는 새로운 비법을 발명했는데, 커피콩을 불에다 바로 구워서 얇게 갈은 후, 석탄가루로 불을 때워 물이랑 같이 끓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터키 커피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커피콩 총생산량의 1/3을 브라질 콜롬비아 코트디부아르가 생산하고,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가 1/4을 생산한다.
큰 규모의 커피나무 재배는 1696년 이후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하였다. 그 후에 전 세계 열대 지방으로 퍼졌고, 1719년에는 서인도제도와 남아메리카의 수리남에서, 1760년에는 브라질에서 크게 성공하였다. 19세기 초기에 인도네시아의 자바 수마트라 티모르 등 네덜란드 식민지에서 재배가 활발하였고, 1830년에는 인도에 커피농원이 만들어져 아시아의 커피재배는 1860년경에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1869년에 스리랑카에서 커피나무가 말라죽는 병이 발생해 인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를 거쳐 필리핀까지 퍼지면서 아시아의 커피재배는 결정적인 타격을 받았다.
그 후 아시아에서는 병해에 강한 품종인 아프리카산 리베리아 커피나무를 도입하여 재배하였지만 완전히 병해를 극복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아라비아커피나무보다 질적으로 떨어져 실패하였다. 결국 병해의 피해를 입지 않은 다른 지역 커피에 눌려서 아시아의 커피재배는 크게 위축되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재배를 계속해 온 인도네시아에서는 1900년에 벨기에령 콩고(현재의 자이르)에서 발견한 로부스타커피나무를 도입하여 재배에 성공하였다. 이것은 병에 강한 품종으로 말레이반도로 퍼져 평지에서 해발고도 1,000m까지에 걸쳐 재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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