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단맛에 쉽게 빠진다. 세계인을 혀의 노예로 만든 설탕은 인류 역사의 어두운 면과 종종 함께 했다. 돈 많은 귀족들의 사치품에서 노예무역 중심에 선 설탕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설탕 사치품에서 필수품으로 태어나다
설탕의 원료는 사탕수수나 사탕무다. 사탕무로부터 설탕을 제조하게 된 때가 19세기 후반인 것을 감안한다면 설탕의 역사는 주로 사탕수수와 연관돼 있다. 사탕수수는 기원전 8000년 서태평양 뉴기니 에서 처음 재배됐다. 기원전 4세기, 태평양을 건너온 사탕수수는 인도에서 처음 설탕 결정체로 만들 어졌다. 이후 사탕수수는 중국, 페르시아, 이집트의 통상로를 통해 서양에 전해졌다.
유럽은 설탕의 존재를 11세기말 시작된 십자군 전 쟁 때 비로소 알게 됐다. 단맛을 내는 감미료라고는 꿀밖에 없던 유럽인들에게 설탕의 맛은 별세계 였다. 유럽인들은 아랍으로부터 설탕을 비롯해 설탕 제조기술을 받아들여 지중해 지역에서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설탕은 중세 유럽에서 최상류층의 사치품이자 페스트 치료제였다.설탕이 지금처럼 보편적인 감미료로 사용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탕수수 재배와 가공에 어마어마한 인력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근대 농장 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설탕이 대량으로 생산되지 못했다. 그러나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열리고 포르투갈과 영국 등이 신대륙을 식민지 삼아 설탕 산업에 뛰어 들면서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카리브해 섬에는 노예의 강제노동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이 들어섰다. 수만 명의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섬에 끌려와 노동을 착취당했다. 이무렵 유럽에서는 커피와 홍차 등의 음료가 인기를 끌었고 설탕 소비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설탕의 영향력은 유럽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가기 시작했다. 귀족의 호사품이었던 설탕은 노동자들의 식탁에도 오르며 모든 가정의 생활필수품이 되었다.
설탕과 노예무역의 검은 그림
설탕의 치명적 유혹은 쓰디쓴 흑인노예의 역사를 초래하기도 했다. 역사가 에릭 윌리엄스는 설탕이 있는 곳에 노예가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설탕은 많은 사람을 노예로 전락시켰다. 카리브해에 끌려간 수만 명의 아프리카 사람들과 그곳의 원주민들은 서양인들의 노예로 수탈당했다. 당시 설탕 제조 공장에서 노예로 일하던 사람들의 삶이 묘사된 모습은 처참할 정도다. 하루의 대부분 을 폭염 속에서 땀 흘리며 일하고, 잠을 자는 공간 조차 제대로 마련되지 않아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없었다. 일하는 동안에도 채찍을 든 감독관들 때문에 늘 가혹 행위에 시달리곤 했다.
15세기부터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에 도착한 노예는 적어도 1,600만명 이상이라고 알려졌다. 이 중 900만명 정도는 서아 프리카에서 카리브해 섬으로 팔려갔다. 카리브해 섬에 팔려온 아프리카 노예의 평균 수명이 7년이었다는 통계는 이들의 처참한 일생을 짐작케 한다.
19세기 이후 노예 제도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영국 사회에 야만적인 노예무역을 없애자는 움직임이 생겨났으며, 유럽과 미국에서도 폭리를 취하는 카리브 해 농장주들을 강하게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마침내 19세기 덴마크를 시작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 노예 매매를 폐지했다. 이후 1833년 영국령, 1848년 프랑스령, 1863년 네덜란드령 식민지에서 각각 노예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 됐으며, 같은해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함으로써 수백만 명이나 되는 흑인 노예에게 자유의 기쁨을 주었다.
조선 왕도 맛보기 힘들었던 설탕, 일제시대 보급
한반도에 언제 들어왔을까? 설탕에 관한 문헌상의 최초 기록은 고려시대 명종 때 이인로의 파한집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한 승려가 설탕 100덩어리를 사서 방 안에 두었다고 나온다. 조선시대만 해도 설탕은 왕실에서도 구하기 힘든 귀한 물품이었다. 설탕이 한반도에 비로소 보급된 것은 20세기초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 일본의 제당기업 인 대일본제당은 평양에 사탕무를 원료로 한 공장을 세웠다.
이때만해도 설탕은 귀한 식재료였으며 설탕이 비로소 대중적 기호식품으로 자리 잡은 것은 해방 이후다. 1953년, 국내기업 제일제당(현 CJ제일제당)이 부산에 첫 설탕공장을 지었다. 이후 국내에 설탕이 본격적으로 유통됐다. 1960년대부터 가정 음식에 설탕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 당시 설탕은 조미료, 비누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명절 선물이었다. 1990년대 외식문화가 확산되면서 설탕 소비는 급격하게 증가했다. 오늘날 설탕 섭취량은 늘고 늘어 전 세계 1인 설탕 소비량은 한해 22kg을 넘었다. 여전히 인류는 설탕의 끊을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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