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야기] 홍차의 유래, 영국 홍차에 대해 알아보기
[차이야기]

[차이야기] 홍차의 유래, 영국 홍차에 대해 알아보기

슈가콩 2024.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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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홍차문화의 발전은 대략 16세기 이전의 중국시대로 차의 발생과 주 변국으로 확산의 시기를 말하며 16세기에 들어서면 포르투갈이 유럽에 차를 전하고, 17세기 네덜란드에 의해 차가 유럽에 전해지며 18세기에는 영국에서 차가 보급되고 19세기에는 국민음료로 정착되며 20세기에는 세계로의 확산 과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영국의 홍차문화가 어떻게 동양으로부터 전해졌는지 전파과정과 영국 내에서 뿐만 아니라 세계로 확산된 차문화의 경로를 살펴보고 영국 차문화를 살펴보자.

홍차의 기원

홍차의 기원에 대한 정확한 시기와 장소는 명확하지 않지만 가장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는 중국 푸젠성의 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요. 청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찻잎을 버릴 수 없어 소나무 가지에 불을 지펴 찻잎을 말렸고 의외로 맛있는 차가 탄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홍차의 발효 과정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우연한 발견이 새로운 차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합니다.

 

홍차가 유럽에 처음 소개된 시기는 16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당시 유럽인들은 차에 설탕이나 우유를 넣어 마셨으며 차는 귀한 음료로 여겨졌습니다. 17세기에는 영국 동인도 회사가 차를 대량으로 수입하면서 영국에서 차 문화가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홍차의 종류는 홍차의 발효 정도에 따라 다양한 종류로 구분하는데 대표적인 홍차 종류로는 아쌈 홍차로 인도 아쌈 지방에서 생산되는 홍차이며 강한 몰트향과 묵직한 바디감이 특징입니다. 다르질링 홍차는 인도 다르질링 지방에서 생산되는 홍차이며 섬세하고 꽃향기가 나는 것이 특징입니다. 우바 홍차는 스리랑카 우바 지방에서 생산되는 홍차이며 견과류 향과 달콤한 맛이 특징입니다. 케냐 홍차는 케냐에서 생산되는 홍차이며 밝은 붉은색과 상큼한 과일 향이 특징입니다.

홍차의 전파가 가져온 영향

홍차의 전파로 인해서 세계는 경제적 성장이 활발해 졌으며 홍차는 많은 국가의 경제 성장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영국은 차 무역을 통해 큰 부를 축적했고, 인도, 스리랑카 등 차 생산국들은 주요 수출 품목으로 삼아 경제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홍차는 다양한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 역할을 했는데요 차를 매개로 문화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 각국의 문화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기반위에서 홍차는 사회적 지위와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기도 했으며 차를 마시는 방식이나 차기는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영국 차문화의 발전

영국의 차문화가 유입 발전되어온 과정을 살펴보면 차와 수반된 문화로, 의생활의 측면에서 화려한 의상 드레스 티 가운 등의 복식과 도자기의 발달과 티 테이블의 장식요소인 테이블 클로스 도일리 티 냅킨 등은 테이블 세팅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애프터눈 티에 사용된 다양하고 화려한 티 푸드는 식문화의 발전을 가져오는 결과가 되었다. 주생활의 측면에서도 실내 인테리어나 정원문화를 동반하여 아름다운 공간의 창출이 중요한 요소였다. 손 님을 초대하여 정성을 다하는 호스티스의 자세는 에티켓을 발전시키고 인간 관계의 중요함을 시사하며 유대감을 자아내었다. 이것은 현대에 와서 서비스라는 문화와 연결이 되어 상업적 공간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덕목이 되기에 이르렀다.

홍차이야기
홍차이야기

그밖에도 음악적인 요소가 곁들여지면서 인간감정의 편안함과 휴식을 만들고, 티 댄스를 통해 타인과의 교감을 하는 것은 무용과도 접목이 됨을 시사한다. 인간의 서정을 바탕으로 인간관계의 다리역할을 하고 사회성을 창조한 이와 같은 모든 근거로 차를 ʻ복합문화 음료ʼ라 한다. 서구에 처음으로 차를 전달한 것은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였지만 그것은 홍차가 아니라 녹차였다.

 

당시 네덜란드는 중국 및 인도네시아와의 동양무역 에 관해서는 독점적인 입장에 있었다. 마찬가지로 동인도회사를 경영하고 있던 영국은 할 수 없이 인도와의 무역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인도에서 신종의 차나무, 아쌈 종이 발견된 것은 19세기로 당시의 인도에는 차가 없었다. 1630년대부터 이미 차를 마시는 풍습이 널리 퍼져있었던 네덜란드에 비해 1605년이 될 때까지 영국에서 차를 마시지 않았던 연유이다. 영국의 귀족들은 차를 마시기 시작하고부터도 모든 차를 네덜란드로부터 사오지 않으면 안되었다.

 

영국은 1669년에 네덜란드 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고 동시에 전쟁(영국과 네덜란드 전쟁, 1652-1674)을 시작하였다. 중국으로부터 직접 수입한 차가 처음으로 영국에서 유통된 것은 네덜란드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한 15년 후인 1689년의 일이다. 이때부터 영국 동인도회사가 기지를 두고 있는 福建省 하문(Amoi)에서 차가 모아지고 그것이 영국 국내에 유통되게 되었다. 영국에서 녹차보다도 홍차를 마시게 되고 독자적인 홍차 문화가 발달한 것은 이와 관계가 깊다. 아모이에 모아지는 차는 모두 홍차와 닮은 반 발효차였기 때문이다. 武夷茶(bohea)는 찻잎의 색이 검었기 때문에 black tea라고 불렀고 서구에서 차의 주류가 되었다. 영국에서 차가 성행하기 시작한 것은 찰스 2세 때였으며, 그 후 1820년대에 인도의 아삼 지방에서 차가 발견된 후 영국 중상류층에서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19세기 후반에는 ʻ 국민적 음료ʼ로 정착되었다.

 

홍차 문화의 도입

영국이 특유의 홍차문화를 형성하게 된 계기는 1662년 찰스 2세와 포르투 갈의 공주 캐더린(Catherine of Braganza)의 결혼이다. 그녀는 지참금으로 포르투갈의 영토인 인도의 봄베이 섬과 대량의 설탕을 가져왔다. 당시 포르투갈은 설탕공급을 거의 독점하고 있던 브라질을 식민지화하고 있었다. 캐더 린은 차와 함께 당시에는 은과도 맞바꾸던 설탕을 자신이 타고 온 선박의 균형을 잡기 위해 Ballast로 싣고 왔다. 차는 진귀하고 사치스러운 기호품이었는데 여기에 더해 또 하나의 귀중품 인 설탕을 첨가해 마신다는 것은 상류층의 호화로운 차 취미에 적중해 급속 히 확산하게 된다.

 

그녀는 차 마시는 습관도 영국 궁정에 들여왔다. 아시아와 관계가 깊었던 포르투갈 에서는 이미 왕실에서 차를 마시는 습관이 정착 되어 있었던 것이다. 봄베이 섬은 후에 동인도 회사가 인도 제국을 건설할 때 전초 기지가 되어, 훗날 영국에 홍차를 생산케 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설탕은 동양의 귀중 한 차에 진귀품을 넣어 먹는다고 하는, 영국식 홍차문화를 형성하는데 결정 적 역할을 하였다.오늘날 홍차라 하면 영국을 떠올린다. 그러나 차의 발원지는 중국이며, 홍차도 중국에서 처음 탄생했다.

 

다만 영국에 들어와 꽃을 피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홍차라 하면 영국의 이미지가 강한 것이 사실이다. 차가 유럽으로 수송되기 시작한 17-18세기 무렵의 중국 녹차는 이미 明代의 발전기를 거친 뒤여서 산화효소의 활성이 열로 완전히 살청 되어 있는 덖음차였다. 이무렵 중국에서는 각종 차가 개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는 홍차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복건성의 日乾式 武夷茶가 이미 제조되고 있었다.

 

중국에서 반발효차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10세기 경이라 전하나 그에관한 확실한 사료는 없고 발효차인 홍차를 제조하기 시작한 것은 1610년 중 국 福建省 武夷山市 星村鎭 東木村 일대에서의 일이다. 이것은 차(녹차)가 유럽으로 수출되기 시작한 때보다 약간 앞선 시기의 일이다. 그 무렵까지는 아직 발효차의 중국내 소비가 많지 않았고 따라서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18세기 초까지도 영국으로 수출되는 발효차[武夷茶]의 양은 별로 많지 않았다. 1702년 영국동인도 회사의 주문서를 분석해 보면 하급 녹차인 松羅山이 3분의 2, 고급 녹차인 大珠 (임페리얼)가 6분의 1, 나머지 6분의 1이 武夷茶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때까지도 영국 사람 들 역시 녹차를 주로 마신 것이 분명하다.

홍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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